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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사설:칼럼 (기고)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회장 이용우
  • 등록일  :  2009.04.07 조회수  :  23,060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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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유산 때문에 형제간에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3형제 중 맏형은 대학교수 둘째는 기업인 막내아들은 직업이 변변치 못했으나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는 숨지기 전 막내아들에게 시가 580억 원짜리 건물을 명의 이전해줬다.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막내아들이 치매 증세가 있던 아버지를 속여 건물을 넘겨받았다고 고소했다.

        검찰로부터 이 사건의 조정을 의뢰받은 형사조정위원회는 3형제를 출석시켜 사건의 정황과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형제들은 그동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오해를 하고 고소까지 했다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했다. 사건은 막내아들이 건물을 관리하되 나중에 건물을 정리하게 되면 서로 배분하기로 합의하고 마무리됐다.


        형사조정이란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의 고소사건과 소년 의료 명예훼손 임금체불 경계침범 등 일정한 형사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에 이를 수 있도록 인품과 소양을 갖춘 지역사회의 전문가로 구성된 형사조정위원회에서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소하기 전의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검사의 의뢰로 진행된다.


        원래 형사조정제도는 1960? 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이른바 ‘소송의 폭발’ 현상에 자극받아 탄생했다. 기존 사법체계로는 분쟁 당사자 간에 감정의 골만 키우는 후유증이 크다는 점을 깨닫고
    지역사회의 동참을 통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형사분쟁 해결을 도모하려는 ‘대체적 분쟁해결 시스템(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오늘날 형사조정제도는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서 시작한 이후 폴란드 체코 러시아 등 동유럽권까지 확대됐다. 유엔은 1985년부터 형사사법 절차에 조정 절차를 활용하라는 권고안을 수차례 채택했고 유럽연합(EU)도 2001년 형사조정 절차를 2006년 3월까지 입법화할 것을 의결해 대부분의 회원국이 입법을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도 2004년 9월 1일 법무부 후원하에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돼 현재 전국 57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형사조정위원회가 설치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형사조정위원은 변호사 대학교수 기업인 법무사 변리사 회계사 공인노무사 등 총 1800여 명에 이르는데 모두 지역사회에서 덕망과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사이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08년에 총 1만1496건의 형사조정을 의뢰받아 5632건을 조정 성립시켜 성립률이 51.6%에 이르는 실적을 거두었다.


        형사조정을 통해 얻는 효과는 우선 과다한 소송비용의 지출을 막아준다는 점이다. 둘째로 당사자 간 분쟁이 형사사건화되면 수사기관과 법정에 출석하는 데 따른 명예손상? 정신적 충격 등의 피해가 있으나 형사조정은 비공개로 신속하게 진행돼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셋째로는 지역사회에서 덕망 있는 형사조정위원들이 분쟁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조정과 화해를 통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사조정제도는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분쟁해결 시스템으로서 검증이 된 상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한 채 검찰 내부의 지침 등에 근거를 두고 운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형사사법의 한 절차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꼭 필요하다. 현재 형사조정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정부안으로 제출돼 있지만 법안 통과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법안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법인 만큼 하루빨리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용우 전국범죄피해자지원 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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